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2차 세계 대전이 종전되고 세계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두 체계가 팽배하게 정치 갈등을 겪으면서 냉전시대로 돌입한다. 작 중 중요한 배경인 체코는 소련이 침공하여 체코인들은 소련의 감시를 받아야 했는데 주요 인물인 토마시, 테레자, 사비나는 이러한 체코 출신이며 프란츠는 체코가 가진 변화와 역동적인 혁명성을 동경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4명의 주인공의 욕망
테레자
테레자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하고 자문해본다. 테레자는 ‘개인의 자유’가 억압된 프라하에서 산다. 테레자의 엄마는 테레자가 수치스럽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모두 까발리면서 테레자의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강제로 노출시킨다. 테레자는 무척이나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지만 테레자 주변을 둘러싼 세계(국가와 가족)는 그녀에게 ‘개인적인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것.’, ‘개인이 되는 것.’ 타인과 명확한 경계선이 그어져 있어 분명하게 나라고 말할 수 있는 무언가를 테레자는 갖지 못했다. 그러니 테레자가 원하는 것은 남과 공유할 수도 빼앗길 수도 없는 자신만의 무언가이지 않을까? 그리고 많은 작품이 그러하듯 테레자가 원하는 테라자만의 것을 발견해주고 이해해주는 것은 사랑이었기에- 테레자는 토마시를 만나자마자 가족을 버리고 그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 토마시가 그녀를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로 대해주기를 기대하며 테레자는 무거운 짐가방을 들고 그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토마시
초반의 토마시는 사비나와 비슷한 인물이다. 가벼움을 쫓는 인물처럼 보인다. 전 아내와 아들과의 연을 끊었고, 이를 비난하는 자신의 부모와도 연을 끊었다. 수많은 파트너들과 가볍고 짧은 관계를 즐기며 절대로 여자와 같은 침대에서 잠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토마시가 왜 테레자만은 예외로 받아들였을까? 테레자는 토마시와 함께 같은 침대에서 잠에 들며, 토마시와 함께 한 평생을 산다.
토마시는 테레자가 보자기에 씌여져 강가에 떠밀려온 아기 같다고 했다. 마치 오이디푸스처럼. 토마시는 그래서 테레자를 내칠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의 피가 섞인 가족도 외면한 그가, 완전히 낯선 테레자는 외면하지도 떠나지도 못하고 그녀의 사랑에 종속된 채 살아간다.
이를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토마시는 자신의 삶에 중심이 되어줄 무거운 무언가를 원했던 것은 아닐까? 토마시에게 있어 무거운 것은 사랑이 아닌 동정이다. 자신이 동정할 수 있는 그 무언가. 그것은 자신의 전 부인도, 친 아들도 부모도 아닌 테레자였다.
사비나
현재 시점에서 읽었을 때 가장 좋아하지 않은 인물. 하지만 만약 20대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나는 어쩌면 가장 좋아하는 인물로 사비나를 꼽았을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사비나는 작 중 가장 가벼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솜털처럼, 깃털처럼, 존재하지도 않은 것처럼 그녀는 가족과 조국, 프란츠와 그 외 모든 것을 배반하고 떠난다. 그녀는 줄곧 배반을 원하고 배반을 행하다가- 누구에게도 특별히 기억되지 않을 만큼 가벼워진다.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사비나는 우울함을 느낀다.
프란츠
프란츠는 동경할 대상을 원했다. 그는 다른 캐릭터들과 다르게 안정적인 세계 속에서 살았다. 그의 조국은 소련의 간섭이 닿지 않는 스위스이며, 그는 교수라는 안정적이고 인정받는 직업을 갖고 있다. 그는 잘생겼으며 몸매도 좋고, 가정을 이루고 있다. 그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상태이기에 그의 삶과는 반대되는 것들에 강한 끌림을 느낀다. 이를테면 투쟁. 그에겐 시위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보다 역동적이지만, 그는 시위를 그저 체험할 뿐 경험하지는 못한다. 그가 동경하는 사비나와 투쟁, 체코 이 모든 것들을 그는 그저 체험할 뿐- 경험하지 못했다. 그의 동경은 결국 신기루 같은 것이다. 보이지만 닿을 수 없는- 그저 편안한 곳에서 바라보는 잠깐의 현상. 그렇게 따지면 프란츠의 동경 또한 가벼운 것처럼 보인다.
총 평
작가는 니체의 영원 회귀와 함께 소설을 시작한다. 영원한 반복은 무겁고, 찰나였던 것은 모두 가볍다고 한다. 그렇다면 토마시와 테레자의 삶은 무겁다. 서로가 서로의 인연을 끊어내지 못하고 두 사람의 하루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 반복성이, 그 무거움이, 이 책에서는 부정이 아닌 긍정으로 표현하고 있다. 무거움은 엄청난 위안이자 행복인 것이다.
모든 것을 쉽게 배반하던 사비나는 어느 날 우울함을 느낀다. 그녀 스스로 왜 우울한가를 들여다 보았더니 원인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모든 관계는 한 번 뿐이다. 반복되지 않고 늘 끝을 맺는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런 생각이 들었을 거다. 자신은 어디에도 속한 적이 없고, 누구도 사랑한 적이 없다고.
작 중 이런 대사가 나온다.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 뿐인 것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 번만 산다는 건 전혀 살지 않은 것과 같다.” 찰나가 주는 무한한 공허함에 질식해 사비나는 우울을 느꼈던 것이다.
가벼움과 무거움. 한 철학자는 가벼운 건 긍정이고 무거운 건 부정이라 말했지만 책은 4명의 주인공을 통해 상반된 주장을 한다. 무거움이야 말로 의미로 가득 찬 긍정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아주 큰 감동을 느꼈다.
